▲장그래는 노력한다. 하지만.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식민통치에 온 국민이 항거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96년 후 2015년, 독립을 위해 애쓰신 조상들과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념하는 날, 씁쓸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 드러났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울부짖었던 3월 1일의 그날은 96년 후 비정규직 1000만 시대를 앞둔 서민들의 생활고에 대한 탄식으로 바뀌었다.

 

 

▲해당 기사 베스트 댓글 1위

 

무려 3000명 이상의 추천을 받은 호감 1위 베스트 댓글은 참으로 처참하다. 어느 순간부터 사회의 불합리, 모순에 대한 외침은 '혹시 내가 잘못한 까닭은 아닐까'라는 자기 반성의 속삭임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은 주제에 불만만 많아'라는 부정의 메아리에 수동적인 태도로 변모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력 안한 개인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 심하지 않나...'라는 비참함이 뒤섞인 한탄은 희망없는 사회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하지만 이러한 서민들의 마음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활고 끝에 내몰리거나,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누군가, 그들은 '노력'이라는 폭력을 가한다.

 

 

▲해당 기사 베스트 댓글 1위에 달린 댓글

 

'승자'의 훈장과 '노력한 자'라는 휘장을 뽐내며 '패배자에게 전하니, 전리품은 승리를 위해 노력한 자의 것이다'라는 승자의 선언이다. 빈익빈 부익부, 무한경쟁주의 사회의 이면은 제국주의의 선봉에 선 승자의 모습과 닮았다. '너희는 못났기 때문에 문명을 거룩하지 못한 것이다. 발전을 이룩한 위대한 우리들이 너희를 도울 것이니 시키는 대로 하면 너희도 우리와 같은 위대한 국민이 될 것이다'는 '미개한 너희들이 노력도 하지 않으니 삶이 고달픈 것이다. 우리처럼 되려면 자기계발을 하고 주어진 삶에서 열심히 일해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의 이면 속 진실 '우리가 하라는 대로 하더라도 너희는 우리 수준에 도달할 수 없어'마저 '노력해도 상위 10퍼센트는 못 되겠지'와 똑같다.

 

상위 10퍼센트가 되지 못 한다하더라도 그들의 설교대로 자기계발을 해서 스펙을 쌓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다면, 어두운 구름이 걷히고 따스한 태양 빛이 내게 비춰질까? 식민지의 허물을 벗고 선진사회를 향한 날개짓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의문을 품기 전에 우리는 너희가 말하는 패배자가 아니다. 우리는 미개한 족속이 아니다. 우리는 너희와 똑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들이다.

 

 

 

 

 

 

'성공하다'라는 말은 사람마다 나름의 기준이 있겠지만, '정규직'이 성공한 인생으로 평가받는 이 사회에서 '정규직되기'로 동의하자.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의 꿈을 이루다'로 생각하자. '성공에 도취된 자' 그들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첫째도 노력, 둘째도 노력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해야 성공의 값어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런데 그들 뿐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우리의 친구, 우리의 동생 모두 '노력'이라고 말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다', '형설지공' 등 노력에 관한 우리 내면의 조언은 태어나서부터 함께 해왔고, 온갖 자기개발 서적은 '그래도 너가 노력해야 한다'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퍼센테이지와 파이의 크기를 보라.

 

나의 삶, 성공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하지만 논의의 편의와 이해를 돕기 위해 '주어진 환경'과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이분의 세계를 상상해보자. 어떤 이는 100중에 30정도만 노력하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 또 다른 어떤 이는 100중에 50정도만 노력하면 목표를 성취한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주어진 환경이, 보이지 않는 사회의 문턱을 넘기 위해 더 고된 노력을 해야한다. 하지만 고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재벌 2세, 3세만의 '경영 수업'이라는 고속승진이 담보된 특강을 한편으로는 부러운 눈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냉랭한 시선을 겨눈다. 우리는 전관예우라는 법치국가의 미풍양속을 먼 발치서 바라보며 어두운 거울에 비치지 않는 나의 외로운 경력을 생각한다. 우리가 접속할 수 없는, 잡히기조차 하지 않는 그들만의 인맥 와이파이의 혜택을 받는 누군가를 보면서 차가운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우리보다 조금 더 나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기도 하고,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좋은 환경에 있다고 겸손해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환경을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왜 환경, 사회의 문제라고 말하기 전에 자기반성의 속삭임 속 괴로움에 사무쳐 나를 다그쳐야 하는가.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없는 사회다. 물론 예외로써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 신적인 기지를 발휘해 성공을 쟁취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도 그 신적인 기지를 환영해주는 세상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노력이 빛을 발휘한 것이다. '정의는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크 센델은 '마이클 조던의 성공은 온전히 그의 노력덕분인가'라는 질문에 '농구를 잘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노력이 빛을 발휘한 것'이라는 주장을 언급하며 마이클 조던이 NBA의 고장 미국이 아닌 다른 제 3세계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떠하였을까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노력은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노력한다고 해서 무조건 우리의 꿈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노력'을 삶의 덕목으로 하는 사회에서 칭송받는, '노력한 자'라는 휘장을 퇴색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좋은 환경이든 어떻든 노력한 자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수이며, 노력하는 사람은 아름다움으로 남아야 한다. 이 말은 패배의 이유를 노력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력과 환경의 조화를 인정하는 것은 성공한 후에도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은 삭막한 사막에 단비를 내려주기보다 선인장처럼 가시를 곳 세운채 스스로 자생하라고 말하며 왜 가시를 세우지 못하냐고 채찍질 한다. 지금이 순간이 삭막한 세상이라는 사실을 숨긴채

 

 

해당 기사의 출처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7436326 입니다.

Posted by 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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